부부 사이가 멀어져 이혼을 고민하거나 소송을 준비하다 보면, 한집에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 별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몸이 멀어지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돈입니다.
경제권을 쥐고 있는 쪽(주로 남편인 경우가 많지만, 최근엔 아내인 경우도 많습니다)에서 너 혼자 나갔으니 알아서 살아라라며 신용카드를 정지시키고 생활비 지급을 끊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반대로 아이를 데리고 나온 쪽에서는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합니다.
법적으로 아직 남남이 아닌데, 단지 따로 산다는 이유만으로 생활비를 주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혹은 아이 양육비는 이혼이 확정된 뒤에나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오늘은 별거 기간 중에 발생하는 부양료(생활비)와 양육비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부부는 서로 먹여 살릴 의무가 있습니다 (부양의무)
우리 민법은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부부간의 부양의무라고 합니다. 이 의무는 단순히 굶어 죽지 않게 밥만 먹여주는 수준(생활부조)을 넘어, 나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수준과 동등한 수준의 생활을 배우자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높은 수준의 의무(생활유지)를 의미합니다.
[판례]
대법원 2023. 3. 24.자 2022스771 결정
“배우자 일방이 스스로 정당한 이유 없이 동거를 거부하면서도 상대방에게 부양료의 지급을 청구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귀책사유 없는 배우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부양료의 지급을 청구하는 것은 부양료 지급의 요건 및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록 당사자 쌍방이 이혼소송을 서로 제기한 경우라도 인정되어야 한다.”
이처럼 대법원은 정당한 이유없이 동거를 거부하면서 부양료를 청구할 수는 없으나, 귀책사유 없는 배우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혼소송 중이라도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의무가 혼인 관계가 법적으로 종료될 때까지, 즉 이혼 신고가 수리되기 전까지는 계속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별거 중이라도 이혼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경제적 능력이 있는 배우자는 상대방에게 생활비(부양료)를 지급해야 합니다.
만약 남편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면, 별거 중인 아내 역시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생활비를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단순히 이혼소송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생활비를 끊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법률상 부부라면 상대방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2. 생활비를 못 받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나요?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생활비를 줘야 할까요? 예외는 있습니다. 법원은 권리 남용에 해당하거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부양료 청구를 제한합니다.
쉽게 말해, 정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가출하여 부부의 동거 의무를 위반했거나, 가정 파탄의 주된 책임이 생활비를 달라고 하는 쪽에 있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내가 부정행위(외도)를 저지르고 내연남과 살기 위해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편에게 아직 이혼 안 했으니 생활비를 내놔라라고 청구한다면 어떨까요? 법원은 이런 경우까지 남편에게 부양 의무를 지우는 것은 사회 정의에 반한다고 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의무(동거, 협조)는 팽개치고 권리(돈)만 챙기려는 행위는 보호해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3. 아이를 키우는 비용은 별개입니다 (양육비)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배우자의 생활비(부양료)와 자녀의 양육비는 완전히 별개라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외적인 상황, 즉 아내가 유책 배우자로서 집을 나간 경우라고 가정해 봅시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생활비는 청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키우고 있다면 어떨까요? 이때 남편은 아내에게 아이의 양육비는 반드시 줘야 합니다.
양육비는 부부의 잘잘못을 따지는 위자료가 아니라, 자녀의 생존과 복리를 위한 돈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별거하든, 이혼 소송 중이든, 누가 잘못했든 상관없이 자녀는 부모로부터 부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비양육친(아이를 안 키우는 쪽)은 양육친(아이를 키우는 쪽)에게 양육비를 지급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아이 밥값은 어른들의 싸움과는 무관하게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의 확고한 태도입니다.
4. 실제 사례로 보는 대처법
[사례]
결혼 5년 차 주부 A씨는 남편의 폭언을 견디다 못해 4살 된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왔습니다. 화가 난 남편은 네 발로 나갔으니 한 푼도 못 준다며 생활비 입금을 끊었습니다. A씨는 당장 아이 분유값과 기저귀값이 없어 막막합니다.
이때 A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A씨의 가출은 남편의 폭언이라는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가출이 아닌 피신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유책 사유가 없으므로 남편에게 자신의 생활비(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이를 직접 키우고 있으므로 당연히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부양료 및 양육비 지급 사전처분 신청을 함께 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넷째, 이혼을 원치 않는 경우라도 부양료 및 양육비 심판청구를 법원에 제기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더라도,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답변하며 부양료 및 양육비 심판청구를 법원에 제기하면 됩니다.
법원은 남편의 소득을 확인한 뒤, 이혼 판결 선고 시까지 남편은 A씨에게 매월 부양료 00만 원, 양육비 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식의 결정을 내려줄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이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 부과나 급여 압류 등의 강제 집행도 가능합니다.
5. 글을 마치며
별거는 부부 관계의 위기일 뿐, 부모 자식 관계나 법적인 부양 의무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상했다고 해서 상대방의 생계를 위협하거나 자녀의 양육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은 법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혹시 별거 중 경제적인 압박을 받고 계신다면, 이혼도 안 했는데 무슨 돈을 달라고 해라는 말에 위축되지 마십시오. 당신과 당신의 아이에게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사전처분이나 부양료 심판청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소송 기간 중의 삶을 보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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